예전 블로그 보기2008/08/10 23:50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렇게 이지함 화장품 여성 CEO이신
김영선 대표님의 인터뷰를 보게되어서 이지함 화장품에 관심있으신분들이 함께 보시면서,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워나가시면 어떨까 해서 소개시켜 드립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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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를 보면 사람들은 대학때도 적극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을 많이들 하시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내가 약대를 택했던 이유는 평생 일을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직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문과와 달리 이과 공부는 시험공부를 안하면 답안을 아예 쓸 수가 없었고, 약대는 시험이 너무 많아서 그것만 따라가도 빠듯했습니다. 서예반과 의료봉사 써클활동을 했을 뿐이고 여행도 한 번 못해봤습니다. 내 대학생활은 그런 학과생활이 거의 전부였습니다. 약대는 100% 취직이 되기 때문에 영어공부를 열심히 할 필요도 없어서 회사에 취직한 후에야 필요 때문에 영어공부를 했고 운동, 다른 회화 등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연애도 못했습니다. 가끔 미팅을 했지만, 딸만 셋이던 집의 장녀라 아들을 낳지 못한 엄마의, 며느리로서의 콤플렉스를 많이 들으며 자랐습니다. 어릴때부터 엄마가 반대하는 결혼은 하지 말아야하며 아들가진 집보다 더 잘 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남자를 편히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고 누구를 만나도 감정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상대가 내게 적극적이지 않으면 관계가 지속되지 않아서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한 채 졸업 후 선봐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내게 있어서는 결혼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같은 것이 없었고, 그저 기독교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만 했습니다. 지금 남편이 다행히도 내게 적극적이어서 두루두루 편하자는 생각으로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에 관한 한 내 선택은 지금 이십대들에게 그다지 ‘교훈적’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열렬히 연애해서 결혼해야지 하면 열렬히 연애한 친구들 왈, 그렇게 하나 이렇게 하나 5년 지나면 똑같다고도 합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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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된 축복

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원에 진학할까 하다가 여의치 않아 제약회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약사 일은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제약회사에서 약사는 보통 개발부나 마케팅 일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3년 정도 일하던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옮기는 과정에서 착오가 생겼습니다. 작은 제약회사의 경우는 주로 학술세미나를 진행하는 업무를 하게 되는데, 부정맥 관련 약물에 관한 마케팅 플랜을 짜라고 하는데 경험에도 없던 마케팅 기획을 해야 하다 보니, 당시에는 모르기도 하지만, 영업을 해본 적도 없어서, 여러 영업사원에게 전화로 물어서 기획을 짜는 수준이었습니다. 프로덕트 매니저(PM)가 그 역할을 수행하는 직책이었습니다. 마케팅에 관한 경험이 필요하고 관련회사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큰 회사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는 그만두었는데, 갑자기 나를 스카우트 했던 회사에서 말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다니던 회사에서 스카웃 제의를 알게 되어 협회에 문제제기를 하는 등의 논란이 생긴 모양이었습니다. 오도가도 못하게 된 나는 황당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고,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여행을 갈 수도 없던 때였습니다. 나보다 더 잘 아는 전문가들을 앉혀놓고 프리젠테이션하는 일이 너무도 스트레스여서 속 편하게 지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으나 덜컥 실업자가 되어 오전에는 아기를 돌보고 나면 오후부터 저녁까지 답답함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두 달 반 동안 쉬는 것을 견딜 수 없던 나는 동네 약국의 파트타임 약사로 취직을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쉬어보면서 매일매일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를 알고는 지금껏 놀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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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을 줄 수 있나



그러던 중 존슨앤존슨에서 마케팅 직원을 뽑는다는 광고를 누가 알려주어 응모하게 되었습니다. 최종면접을 통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최종면접 질문에 응답을 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회사가 왜 나를 뽑아야 하는지를 설명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내 입장이 아닌 ‘회사의 입장에서’ 나를 뽑는 것이 회사에 더 좋은 선택인 이유를 명확히 설명했습니다. 피부과 병원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의사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일이라 때로 어린 간호사들의 문전박대 등이 약사로서는 견디기가 힘든 일일 수 있었습니다. 영업경험을 절감하던 때라, 1년 뒤 동기들은 거의 그만두었지만, 나로서는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배워야만 하는 필요한 일이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소소한 스트레스들을 다 견뎌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영업에 임하던 내 전략은 나에게 시간을 내는 사람들에게 내가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잘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회사가 제공하는 샘플을 당신들 병원 환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할 수 있으면 환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접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지함피부과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지함피부과는 요즈음은 트렌드가 되어버린 미용전문 피부과를 표방한 브랜드 피부과였습니다.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무작정 찾아 갔던 나는 무작정 기다렸습니다. 점심시간이 되도록 의사면담을 할 수 없던 나는 다른 제약회사 직원이 들어가서 면담하는 틈을 타 면담을 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와 그 병원과의 안 좋은 히스토리를 몰랐던 나는 청해서 점심을 샀습니다. 여성이 그것도 약사가 영업이라는 터프한 일을 하는 것을 의아해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결혼은 했어요?” “남편은 뭐해요?” “공무원 뭔데요?” 몇 차례의 질문을 거치고서야 태도가 바뀌는 것 같았습니다. 뜻한 바가 있어서 열심히 하나보다고 생각해선지 좀 다른 태도를 보였습니다. 결혼했다는 사실을 당당히 밝히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하는 매사가 즐거웠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소위 땡땡이를 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다고 해도 아무도 모르지만 업무리포트를 쓸 때면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손해보는 건 회사가 아니라 업무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을 낭비한 나 자신이었습니다. 일을 배우는데다가 덤으로 돈까지 받는, 그런 기회를 소홀히 한 것입니다. 대부분은 아주 열심이었기 때문에 한 번은 이지함피부과에 한석규가 환자로 방문했을 때인데 병원에서 나를 존슨앤존슨 지사장으로 소개할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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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제안, 새로운 기회


 

내가 일했던 분야는 회사의 핵심분야가 아니었고 내가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만둘 결심을 하고 주변에 알렸는데, 그 때 이지함피부과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랑 같이 화장품회사 한 번 해보실래요?’ 하고 제안을 했습니다. 비즈니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지만, 새로운 것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품을 만들어서 병원환자들에게 팔 계획으로 2000년 1월 이지함코스메틱이라는 이름으로 간이사업자등록증을 내고 병원 내 사무실 한 칸을 얻어서 1인 회사를 시작했습니다. 화장품사업부 본부장이던 그 해 7월 병원에 제안을 해서 법인화하고 사무실도 한남동으로 옮겨 G&B코스메틱이라는 이름으로 확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제품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천안에 있는 콜마연구소를 오가며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그 때는 CI도 없었습니다. 당시 한 번은 의사들에게 제품교육을 하던 중, 왜 우리 화장품은 샤넬처럼 고급스럽게 만들지 못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샤넬의 고급스러움은 오랜 시간 노력해서 축적된 브랜드이미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브랜드도 갈고 닦아야 브랜드 가치를 얻을 수 있으니 노력해야 합니다’는 답변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광고나 홍보에 쏟을 자금의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포장은 최소화하고 품질의 내실을 기하자고 임했습니다. 잘 팔릴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습니다. 처음 3년을 고전했습니다. 그러다가 제품을 사용해 본 의사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매출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왔습니다. 한남동에서 1년을 지낸 후 연구실까지 포함하는 지금 사무실로 이전했습니다. 그 때 직원이 6명이었습니다. 콜마연구소소장님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기업형연구소도 만들게 되었습니다. 제조업허가를 얻어서 지금은 직원이 35명~40명으로 늘었습니다. 2006년 시판을 시작했고 올해 매출목표는 100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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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처럼 일하라



내가 직장 다니던 때를 생각하자며 직원들을 바라보려 하지만 나는 안 저랬는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역지사지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내 일에 관한 한 사장이라도 이보다는 열심히 못할 거다라는 생각으로 일했습니다. 오너처럼 일해야 오너가 된다고 얘기합니다. 100만원을 받는다고 해서 100만원어치만 일하면 100만원짜리지만, 천만원짜리처럼 일하면 천만원짜리 직원입니다. 누구나 자기가치보다 적은 급여를 받는 시기를 거치게 마련입니다. 나도 사장이지만 다른 주주들도 있습니다. 그 주주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늘 염두에 둡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그들이 평가하는 사장 사이에는 갭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합니다. 나를 저평가하는 단 한사람의 평가조차 존중하고 부족한 부분을 메우도록 노력하는 것이 내 태세입니다. 직장에 다니는 동생들이 상사 흉을 보는 것을 보면서 직원들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120가치의 직원에게 100만 준다면 다른 회사에서 그 직원을 사갑니다. 그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직원은 떠납니다. 회사에 월급을 올려달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내 가치를 올려야 합니다. 오래된 회사라면 정리가 안되는 나이 든 직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이가 많아지고 컨텐츠가 쌓인다면 그것이 능력입니다만 변화에 대응하는 긴장의 태세를 늘 갖추고 있을 때라야만 그렇습니다. 내가 출근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도 뭐랄 사람은 없지만 긴장의 태세를 갖추는 일은 내게도 적용되는 일이기 때문에 늘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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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나은 CEO


실무형CEO라는 것은 내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CEO는 ‘똑.부’가 되면 안된다고 들 합니다. 똑똑하고 부지런하면 안된다는 것인데, 단계마다 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규모가 적을수록 사장이 일당백인 셈인데 직원도 게으른데 사장까지 게으르거나 직원들도 똑똑하지 않은데 사장조차 똑똑하지 못하면 회사 망합니다.(웃음) 한 컨퍼런스에서 리더는 혁신적인 분위기를 만들 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미친 짓조차도 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어야지 그러지 못한다면 발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실무형이다 보면 판을 만들 여유가 없고 그러다 보면 더군다나 보수적인 내가 창의적이거나 역발상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지기 힘듭니다. 처음부터 일구었고 관리자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당장 실무에서 손 놓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조금씩 실무적인 결정을 하위로 이동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초기 규모가 적을 때는 인사,관리 부분의 비중이 적었지만 지금은 인사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인사팀을 따로 두지는 않았지만 회사 단계에 맞게 필요한 부분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일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회사에 필요한 사람들을 어떻게 키워갈 것인가가 CEO로서 요즈음의 고민입니다. 존슨앤존슨 영업부사장으로 계시는 선배님께서 좋은 멘토역할을 해주셨는데, 고민 속에서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으면 그 때 읽는 것들이나 듣는 얘기들이 해답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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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니면 못하는 것들을 하라



내 인생에서는 대단한 포기를 하면서 어떤 선택을 한 적은 없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선택하는 기준이 있었다면, 지금 하지 않으면 못하는 것을 택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저축은 다음에도 할 수 있지만, 지금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일에 투자를 한다든가, 좀 무리가 되더라도 젊어서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스키를 배운다든가 하는 식입니다. 지금은 다칠까봐 겁나서 스키를 못 탑니다. 그 때 안 했으면 후회했을 일입니다. 너무 많은 포기를 하고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선택이 두려울 것입니다. 내 성향은 너무 위험성이 많은 시도는 하지 않는 편입니다. 나는 변화와 도전을 좋아하는 만큼 싫증도 잘 냅니다. 어떤 분야에 대해서도 대화할 수 있지만 조예가 깊은 분야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잘하자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아픈 말을 듣기도 합니다만, 이십대라면 한 가지에 집중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여러 가지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실패하고 잘 못한다고 해도 시간이 많기 때문입니다. 팔십까지도 충분히 일할 수 있는 건강과 환경이 마련된 시대니, 도둑질, 마약 말고는 해볼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봐야 합니다. 영업 간다고 거짓말하고 쇼핑하러 가보았기 때문에 직원 심정을 더 잘 읽을 수도 있습니다. 복구불능의 경험이 아니라면 다 해보아야 합니다. 무엇에서건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 얼마나 짧든 그 시간만큼은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아이를 낳은 기간을 제외하고 평생 열심히 일했다는 사실만큼은 자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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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위장된 축복’이라는 표현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했는데 뜻대로 안된 경우라면 더 잘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많은 부분도 그렇게 위장된 축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CEO가 되기를 꿈꾸어보지는 않았지만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삶에 대한 동경과 필요한 노력을 꾸준히 하다 보니 CEO도 되었습니다. 꿈이나 목표가 구체적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면 보다 나은 도약의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지금보다 더 큰 회사로 키우고, 그러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소양을 조금씩 조금씩 키워가고 있습니다. 한국회사지만 글로벌한 기업으로서의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나 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조언을 많이 구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작은 회사를 경영하면서도 그토록 힘든 일이 많은데 큰 기업을 하는 분들을 보면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어오셨을까 싶어 존경심이 듭니다. 한꺼번에 많은 일을 할 수는 없지만 규칙적으로 할 수 있는 양만큼 꾸준히 준비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죽을 때까지 그렇게 더 나은 삶을 추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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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롬